이과대학 70주년사 발간을 준비하면서
— 양성덕 —
일단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연혁을 만들어 보았다. 이렇게라도 시작을 하지 않으면 자칫 잘못하다가 “이과대학 70년사”를 만들어 보겠다는 약속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공염불로 만들어 버릴까 두려워서다. 7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70년사를 정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돌아보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혁신을 통하여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창출한다 하더라도 역사는 알아야 한다. 과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하고 그게 반복되지 않을 방도를 생각해야 한다.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서도 역사를 알아야 한다. 조직도 나름의 인격을 갖추고 있다. 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볼 때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러 조직을 놓고 보면 한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비숫한 성격이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조직 중 대표적인 것이 대학의 학과다. 조직의 생리가 어떤지를 알면 비로소 조직이 왜 이렇게 움직여 왔는지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 갈 지도 조금은 알게 된다. 거기에다가 덧붙여 원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움직여 갈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면! 학장으로서 나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이 혜안인데 “이과대학 70년사”를 정리하는 목표 중의 하나는 이과대학의 앞날에 대하여 그러한 혜안을 가져야/가지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여기 정리하는 기록이 고려대학교 이과대학의 다음 30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이과대학이 지금보다 더 영광스러운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면 70년사를 만드는 데 쏟는 나의 시간과 노력은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연혁을 만들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과대학의 전신인 이공대학 이학부에 아주 잠깐동안이나마 체육학과와 가정학과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행정 편의를 위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 보는 이유는, 예를 들어 사범대학을 신설하려면 당장 거기에 포함된 학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학과가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 하고 학과를 만들려면 소속 대학이 있어야 하는, 일종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문제에 봉착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사범대학 설치를 염두에 두고 임시로 이공대학 이학부에 체육학과, 가정학과를 신설한 후 곧바로 사범대학을 만들어 두 학과를 (이름을 바꾸어) 소속변경시킨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짐작이다. 내 가설이 맞는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제 이과대학 70년사 발간을 준비하면서 위 연혁을 바탕으로 살을 붙여 나가면서 이과대학의 지난 70년사를 서술해 나갈 건데, 과감하게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글을 써 나가기로 하였다. 내 무식을 드러내는 단점이 있지만 그에 비하여 얻을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이 몇 있다. 하나는 내가 잘못된 서술을 할 경우 누군가가 그걸 보고 지적을 해 줄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인쇄돼버리면 그땐 정말 끝이므로 최대한 작업 중 많은 지적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이 방법이다. 위키로 만들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일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른 하나는, 여기 졸업생도 아닌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데에 감명을 받고 여러 교우 분들이 조금씩이라도 자료와 글을 주시지 않을 것인가 하는 희망이다. 아참, 이과대학 교우는 아니지만 나도 평생회비를 납부한 교우다. 교우회에 평생회비 납부하면서 기왕이면 이과대학 교우로 넣어 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
이 글을 보시는 교우 여러분, 조금이라도 좋으니 이 홈페이지의 “교우동정 > 회고, 사진”에 자료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중에 자료 정리하여 70년사를 만들 때 혹시 주신 자료가 빠져 있더라고 양해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글과 자료 올려달라는 염치없는 부탁해 봅니다.
이과대학 70년사를 생각하면서 처음 든 생각은 4개 학과의 역사를 합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위 연표를 만들고 보니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문과대학-이과대학 연례교류회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 이는 문과대학과 이과대학이 예전에 문리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11년간 한 몸이었다는 인연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문리과대학이 문과대학과 이과대학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문과대학과 이공대학으로 분리된 것이고 이공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이과대학과 공과대학이 한 몸이었던 기간은 14년이다. 그러면 왜 이과대학과 공과대학은 친선교류회를 갖지 않는가? 단순히 한몸이었던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가치와 경험을 공유하느냐의 문제겠지. 또한 문리과대학 이학부의 학과 구성을 보면 마지막 1년 동안 화학공학과가 있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시간은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과여서 아무래도 지금의 이과대학과 인연이 맞다고 하겠다. 그러면 이과대학-문과대학 연례교류회는 언제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을까? 아 참, 문과대학 교수소식지인 [석탑교수소식]을 보면 문과대학-이과대학 연례교류회라 하고 있다😁.
더욱이 한몸이었던 생물학과, 전산학과 등이 같이 했던 시간은 이과대학의 발전 역사에 있어 적지 않은 시간이어 조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학과들이 분리된 배경과 분리되어 나간 것이 나간 것이 이과대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을 분석하는 것은 향후 이과대학에 다시 이러한 이슈가 생겼을 때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